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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변호사의 비밀유지권 2-법률신문 독자평 2-2
1. 서유럽과 동아시아
이즈음 역사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법이라고 하는 것도 그 문화권 공동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이에 대해서 Article을 한번 쓴적이 있는데(아래 참조), 나는 동아시아 문화의 핵심가치를 "복종과 충성(Obedience and Royalty)"으로 서유럽은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으로 요약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476년) 이후 유럽은 상시적 전쟁상태였다. 중세말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중앙집권 국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쟁상황이었고, 권력집단 내에서도 수많은 혁명을 겪었고, 민간인들도 사법결투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기도 했다(유럽 일부에서는 여성조차 남성과 결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유럽에 비해서 중앙집권국가들이 훨씬 일찍 출현했다. 중국의 경우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221년 진의 통일로 막을 내렸고, 한국은 고려 시대까지 지방분권이 강하였다고 하더라도 조선왕조부터는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500년동안 유럽에 비해 평화적인 시대를 보냈다. 일본도 도쿠가와이에야스가 패권을 확립한 에도시대(1615년)부터 평화의 시기라 가정하더라도 상당기간 평화의 시대를 누렸다.
유럽은 항상 싸움을 통해서 국가와 권력자들간에 승자가 변해왔으므로 싸움 절차의 공정성에 대해서 민감하고 제도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에 비해서 중앙집권식 평화의 시대를 누린 동아시아는 국가의 권력이 커졌을 수 밖에 없고, 민간은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거나 찾기보다 국가가 자신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나랏님'이라는 표현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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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결투 글
2. 고려와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이 실현되었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통합되기는 했지만 지방의 다양성이 살아있던 시절이다. 전시과 제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시과'제도는 10세기 후반부터 고려왕조가 사라질 때까지 400년이 넘게 유지되었다. 고려는 전체 경지의 약 60퍼센트를 일반관료, 군인, 향리 등 개인과 관청에 지급하였고, 조세수취권은 개인이나 기관에 위임되었다(중세 사회의 경제적 기반은 사람과 토지이다). 그 당시 교통의 미발달이나 지방 호족이 건국의 주축이었던 점도 고려가 중앙집권을 이루지 못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계를 비롯한 개혁파는 1390년 9월 기존의 토지대장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과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호족들 치하에 있던 다수의 농민들이 국가에 세금을 낼 자영농이 되었다. 세종 이후에는 전국의 경작지를 대부분 국가가 직접 조세를 거두는 국용전(國用田)으로 만들어 여기서 거둔 조세를 바탕으로 중앙집권적인 재정운영을 실시하였다.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장악한 뒤 이를 각 관청에 분배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런 중앙집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했던 것이 유교와 성리학이다. 군주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이념화하는데 이보다 탁월한 도구가 또 있을까? 일본도 제국을 운영하며 대동아공영권을 외칠 때 이념적으로 황도유학을 주창했고,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활용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는 황도유학의 이념적 영향 하에 있었고, 독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교의 충효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중앙집권을 지속했다.
-유교, 황도유학에 대한 이전 글
-참고서적
새로 쓴 오백년 고려사, 박종기, 전면개정판, 2020, ㈜휴머니스트출판그룹
3. 흥미로운 가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마스크를 잘 쓰는 국가라는 점이 부각된 적이 있다. 권위에 잘 복종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동료와 이야기 하던 중 흥미로운 가설을 들었는데... 다윈이 한단계 진화시킨 라마르크(Lamarck)의 '획득형질의 유전' 이론이다. 유학이라는 정신적인 이념 무장에 이어 조선시대 수많은 박해, 사화로 인해 반항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3족이 멸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수많은 독립적인 기질의 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 그리고 남자들은 의무적인 군대생활을 통해서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배웠다. 옛 어른들이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고 했던 것은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배워온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권위에 복종'하는 '심리'가 획득형질이 되어 유전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먼 어른들이 싸울 때 나이부터 물어보는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실제 관련 논문을 찾아보니 이러한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가설은 '인간의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이 유전자라는 생물학적 물질에 코딩되어 유전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다윈이 발전시킨 라마르크의 이론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기억인 습성이 반사 반응을 관장하는 신경계통을 통해서 후대에 유전된다'는 것이다.
감정표현도 무의식적인 행동이고, 후대에 유전될 수 있다. 실제 후대로 전달되는 것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학적 원리, 즉 '반사의 원리를 관장하는 신경계의 기능'이 유전된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이러한 가설이 타당한지 검증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현상에 나름 들어맞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참고
‘행동의 유전’에 관한 다윈의 진화론과 19세기 신경과학의 만남: 다윈이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극복하는 데 신경과학이 미친 영향, 한선희, 의사학 제28권 제1호, 대한의사학회, 2019